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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의 명맥을 잇는 곳에서 국악으로 펼치는 이야기,
서울 국악로 이야기입니다.

국악로 소개

돈화문로는?

돈화문로는 돈화문에서 종로3가역까지 이르는 거리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와 창덕궁 사이에 위치하고 있어 역사적 자산으로서 가치가 높은 지역으로 거듭나고 있다.
조선왕조의 정궁으로 사용된 창덕궁으로 가는 돈화문로는 조선시대 전국 도로망의 기준이 된 도로기준점이 있었으며 조선시대 대로(大路) 중 유일하게 옛 폭과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길이다.

돈화문로 역사 이야기

한양의 중심에서 남쪽으로 뻗어 나간 돈화문로는 주작대로(朱雀大路) 역할을 하던 중요한 길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이 행차하던 거리였으며 그로 인해 주변에 시전행랑과 피맛골, 순라길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돈화문로는 종묘 행차와 별궁 행차를 비롯해 사신을 마중할 때 쓰던 왕의 길이었는데 어가 출궁시 백성이 징이나 꽹과리로 직접 왕에게 상소하는 격쟁이 가능한 소통의 장소이기도 했으며, 순종이 이용한 우리나라 최초의 자동차(어차)가 다니던 길이다. 또한, 돈화문로는 시전행랑(시전상인들의 점포)이 번성했던 곳이었으며, 국립국악원의 전신인 이왕직아악부 (李王職雅樂部, 왕립음악기관)와 조선성악연구소가 있던 곳이기도 하였다.

다행히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국악의 명맥이 끊기지 않아서 지금도 국악기 상점과 국악 연구소 등이 밀집해 있고 전통의상 및 전통문화 관련 업체들도 많다.

돈화문로가 국악로가
되기까지

조선시대 궁중음악을 담당하였던 장악원(掌樂院)의 후신인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가 1926년 1월에 운니동으로 이전하고, 해방 이후 국립국악원으로 전승되었다. 국립국악원은 1967년 장충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국악로에서 국악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성악연구회는 김초향, 송만갑, 이동백, 한성준, 박녹주 등이 중심이 되어 판소리, 남도잡가, 창극, 산조, 민속무용, 경서도소리 등 한국 전통음악의 공연 및 전수를 목적으로 1933년에 설립되었다. 이후 창극단체를 조직하여 전국을 순회 공연하였고, 창극과 판소리 그리고 민속기악 발전과 보급에 많은 공을 남겼다.

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23호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박귀희 선생은 1951년부터 운니동에서 운당여관을 운영하였다. 이곳에서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운당여관은 많은 국악인들이 머물며 교류하였던 장소이였다. 박귀희 선생은 1955년에 한국민속예술학원, 1960년에는 국악예술학교를 설립하였다. 1989년에는 운당여관과 전재산을 학교에 기부하였고 이 학교는 현재 국립전통예술중·고등학교가 되었다.

국악의 터전인 돈화문로는 이러한 국악의 전통을 잇기 위해 1994년 국악로로 지정되었고 현재 서울돈화문국악당과 서울우리소리박물관 등의 국악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우리 고유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거리로 보존되고 있다.

국악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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